내 / 용 / 보 / 기
글작성자
 C.M.I 2008-03-26 09:40:06 | 조회 : 2990
제      목  《십자가》감독 위엔즈밍의 간증
뜬소문

  나는 1991년에 주를 영접했다. 주를 영접한 후 봉착한 첫 번째 도전은 사람들의 오해였다. 나는 민주화 운동가 중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뜬소문은 곧 퍼져나갔다. 아내의 친구가 “사람들이 네 남편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는 줄 아니? 사람들은 위옌즈밍이 예수를 영접한 데는 단지 3가지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해. 첫째는 현실 도피라는 거야. 민주화 운동을 계속 추진할 수 없게 되자 교회로 도망쳤다는 거지. 둘째는 의지력이 약한 위옌즈밍이 떠돌이 생활의 고통을 참지 못해서 마음으로 의지할 곳을 찾았다는 거야. 세 번째는 나서기 좋아하는 위옌즈밍인지라, 공산당 입당 바람이 불 땐 공산당에 입당하고, 민주화 운동 바람이 부니까 민주화 운동을 하더니, 또 지금은 예수를 믿고 교회 안에서 설쳐대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 혹 장래에 또 다른 누구를 믿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는 거야.”라고 아내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이 거슬려 참을 수 없었던 아내는 저녁 무렵 나에게 “보세요.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는지 알아요. 아마도 사람들이 말한 것이 정말인지도 몰라요.”라며 계속 잔소리를 해댔다.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성경을 펼쳐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사람들에 의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를 조소하며 “만약 당신이 정말 구세주라면 십자가위에서 내려와 당신 자신을 먼저 구해 보라”고 했었다. 그는 죄가 없으시고 순전한 분이시다.

  그는 오로지 선한 일,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만 전념하였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을 가르쳤는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멸시 천대하였던가? 사람들이 그를 못 박아 죽였지만 그는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셔서 “아버지여,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한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말에 약간의 억울함도 받지 않았다. 나는 아내에게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일이오. 그렇게 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지.”라고 말해 주었다. 그들은 단지 위엔즈밍이 작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만 보았지 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들은 “어째서 위엔즈밍은 대로를 걸어가지 않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문 안이 정말 엄청나고 끝없이 넓고 풍부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이 아주 협소하다고 생각하고 들어가지 않는다. 기독교의 문은 아주 협소하지만, 한번 들어가 보면 그 안에 자비와 사랑, 빛, 진리가 충만하고 하늘과 교통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일 후에 미국에서 발행되는 중국신문에 어느 학자의 글 한 편이 게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허상(河殤)≫의 작가들은 자국의 역사를 잘 모르거나 망각하여 자기의 문화를 경멸하고 외국의 것을 맹목적으로 숭배하였는데, 한 명이 예수를 믿고 서방에 온전히 자신을 의탁했다. 이 학자는 “하나님은 서양 사람만의 하나님이고 예수님도 서양 사람만의 예수님이며 기독교는 서양종교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문사의 편집자가 이 글을 나에게 팩스로 전송해 주며 나에게 반박을 할지 물어왔다. 이 문제를 놓고 기도를 하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는 그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학자가 어떻게 이야기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문제였다.

  그 이후 민주화 운동을 하는 친구, 과거에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 또 학자 몇 명을 만나 예수님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네가 과거에 어떠했는지 다 알고 있는데 지금 이런 말을 하느냐고 하겠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든 “예수님을 믿으세요. 나라와 백성을 구원하려면 먼저 자신이 구원받아야 해요. 당신이 구원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나라와 백성을 구원하겠어요?”라고 말했다.

전도집회

  나는 옥스포드(牛津)대학에서 전도집회를 열었다. 점심식사를 할 때 런민(人民)대학 동창 두 명이 함께 있었다. 한 친구가 한쪽으로 나를 잡아끌면서 물었다. “위옌즈밍, 지금 우리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나한테만 사실대로 말해봐. 너 정말로 믿는거야?”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저녁에 와서 들어봐.” 식사 중에 또 한 친구가 말했다. “위옌즈밍, 넌 정말 대단해.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친구들보다 더 총명해.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는걸 보니 좋은 일을 찾은 것 같아.”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이 두 친구는 맨 앞줄에 앉았다. 내가 간증을 마치자 그들은 “아! 정말 네 믿음이 참 진리로구나.”라고 말했다. 왜 이런 표현을 했을까? 우리는 교육을 통해 기독교는 서양 종교이고 제국주의의 도구이며, 아편이요, 사람들의 투쟁의지를 마비시키는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누구도 성경을 읽은 적이 없고 기독교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우리들은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오해하고 비판한다. 하나님은 진리이기 때문에 일단 이해하기만 하면 곧 붙잡힌 바 될 것이다.


‘구속받지 않는다’란 한 구절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 사람이 이 경지에 도달하면 자신에게 뿌리가 있고 생명에 근원이 있으며, 또 모든 우주에는 감정과 사랑이 있으며,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당신이 집을 찾으면 당신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예전에 우리는 인류 아버지가 없고, 원숭이가 변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에게는 갑자기 집이 생기고, 우리들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계셔서 날마다 햇빛, 공기, 빗물, 토지, 식물, 동물, 광산자원, 아름다운 풍경으로 우리들을 양육해 주시니 단번에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더 이상 방랑자도 고아도 아니다. 나는 지금 집이 있고 사랑이 있고 따뜻함으로 충만한 행운아이다.

  이 시기에 나는 더 이상 무슨 철학연구니, 무슨 6.4천안문 사건을 총결산하느니, 무슨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투쟁이니 하는 것들을 해 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주야로 하나님만 생각했다.


예비해 주신 하나님

  나는 신학을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선배들은 공부를 만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신중하게 생각해 봐라. 이제 막 믿기 시작했고 부인은 아직 믿지도 않고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학을 공부하면 너는 분명 실족하게 될 것이다.”

  이 때 하나님께서 내게 길을 하나 열어주셨다. 린츠신(林慈信) 목사님을 통하여 개혁파 신학교를 소개해 주신 것이다. 이 학교의 교무주임이 내게 전화를 걸어 공부할지 여부를 물어왔다. 아내가 옆에서 영어로 “Scholarship”이라 쓴 쪽지를 내게 건넸다. 바로 ‘장학금’이란 뜻이었다. 아내는 아직 주를 영접하지 않은 터라 그녀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생활에 대한 문제였다. 당시 영어실력이 형편없었던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교무주임에게 “Scholarship”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교무주임은 내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영어로 계속 말했다. 나는 그저 OK란 말만 알아들었고, 나도 바로 OK라고 대답했다. 집사람이 뭐라 하더냐고 묻기에 역시 OK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결국 이 학교에 입학했고 정말 모든 일이 예비되어 있었다. 학교에서는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딸의 교육을 원하는지, 아내도 공부하고 싶어하는지 물어왔다. 며칠 후에 학교에서  학비와 방세를 면제해 준다는 영수증이 왔다. 그리고 매달 몇 백 불의 용돈도 주겠다고 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모두 준비해 놓으신 것에 대해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성경 중에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입고 떠날 때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랐다”는 이 구절을 특히 좋아한다. 이것은 정말 아무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호쾌한 말씀이다. 문을 나서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것은 믿음의 생활을 일컫는다. 기독교인이 믿는 것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분이시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천지우주를 창조하셨고 우리 생활을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난관에 부딪힌 영어

  신학교 입학은 했지만 또 하나의 난관은 영어였다. 내 영어실력으로는 수업을 따라 갈 수 없었다. 첫 수업시간 교수님 강의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수업이 끝나면 사람들을 따라 나가면 된다는 정도만 알았다. 그때 한 미국친구가 내게 잘해 주었다. 시험을 위해 답안을 작성하여 나에게 복사해 주기도 하였다. 나는 외우기만 하면 되었는데 아무리 외우려 해도 외워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기도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의 가장 큰 복은 바로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내일이 바로 시험인데 오늘 단어조차 아직 다 외우지 못했으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학업을 포기해야 합니까?” 사람들은 내가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학생이며 천안문 광장에서 활동하다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매번 시험이나 어려운 난관을 잘 넘기도록 도와주셨다. 레포트는 중국어로 쓴 다음 아내에게 번역을 부탁해서 제출했다. 그래서 내가 졸업할 때 아내는 “당신이 신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야.”라고 말했다. 나는 “누가 아니래”라고 응수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들을 쉬게 하리라”하셨다. 나는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밤중에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에서 자주 기도했다. 그러면 마음속에 고요함과 평안함이 밀려왔고, 신학공부가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느껴졌다. 신학교는 많은 지식을 가르쳐주지만, 우리의 생명은 예수님과 더 친밀해져야 한다. 예수님과 친밀하게 되면 새 생명이 생겨나고 지식도 빛을 발하게 되고 유용하게 되는 것이다. 2년 반 동안 나는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미국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면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 만약 내가 중국어로 신학을 했다면 글자 하나 하나 따지고 들어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영어를 잘 몰라 글자나 단어에 집착하지 않고 대충 지나가게 하심을 정말 감사드린다.    


아내의 반대

  그 시절 아내는 아직 주를 영접하지 않았다. 나는 낮에는 정신이 공부하고, 저녁에는 아내와 티격태격해야했다. 아내는 뉴욕으로 돌아가 일하자고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아내가 아직 주를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너는 머지않아 좌절할 거야, 네 아내가 아직도 주를 안 믿는데 너만 신학교에서 공부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제 아내가 믿음을 갖게 해 주십시오. 만약 저만 믿게 하고 그녀는 믿지 않게 하신다면 저는 반쪽 신자나 다름없습니다. 남자의 절반은 여자입니다. 만약 여자가 믿지 못하면 이 남자 또한 반쪽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아내는 18세에 공산당에 입당하여 19세에 부인연맹 주임이란 직책을 맡아 일했을 정도로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나 교회에 다니는 것이지 장래가 있는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을 믿는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전도사가 되고 싶은데 아내가 믿지 않으니 전도하는데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의사선생님! 먼저 자신의 병이나 고치시지요, 전도사님! 당신 부인이나 먼저 믿게 한 후에 다시 와서 얘기하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이 일은 당신이 관여하셔야 합니다. 당신이 관여하시지 않으면 제겐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말을 꺼내면 아내는 늘 반대 심리를 표출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예전에 집사람에게 큰 잘못을 한 적이 있었기에 내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 밤 나는 아내와 딸이 잠들면 아래층으로 내려가 무릎 꿇고 기도했다. 그러면 어둠 속에서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너희 천부께서는 어둠 속에서 너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신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은 아주 절박합니다. 빨리 그녀에게 믿음을 허락해 주십시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기도는 정말 힘이 있다. 기도를 허공에 대고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기도는 영과 영이 소통하는 통로이다. 당신의 심령이 움직이기만 하면 성령께서는 곧바로 감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대화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과 성실함을 모두 알게 되신다. 오묘하게도 그 후 집사람은 정말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내 영어실력을 모자라게 하셨고, 학교에서는 집사람이 나를 도와 신학과목인 4복음서를 듣도록 배려해 주셨다. 나는 중요한 과목을 생각하고, 아내에게 도움이 될만한 과목을 골라 대신 듣도록 했다. 아내는 들으면서 필기를 하여 내게 다시 약간의 해석을 해 주었다. 아내는 이런 기회에 자신의 영어실력도 연습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뻐했다. 그 다음 학기도 내 대신 청강하게 되었고 듣다보니 교회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결국은 진리다

  이 외에도 또 여러 가지 많은 요소가 작용하였다. 내가 설교하고 돌아 온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당신 부인이 주를 영접한대요”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정말이야, 농담이야.”라고 묻자, 그들은 “정말이야”라고 말했다. 아내가 프린스턴에 있을 때 여러 차례 가짜로 믿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형제자매들이 내 아내와 대화 중에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자, 집사람이 고민하면서 “아!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보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형제자매들은 곧 “결단의 기도를 할까요?”라고 물었고, 아내는 “좋아요. 합시다.”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따라하면서 아멘, 아멘 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곧바로 집으로 와 아내에게 사실여부를 물었다. 아내는 “어디서 얘기 들었어? 그들이 하도 귀찮게 해서 기도를 따라 해 주었더니 더 이상 상관하지 않더라고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감히 더 이상 물어보지 못하고, 아내 주변에서 관찰하기로 했다. 얼마 후, 아내가 정말 변화되었음을 발견했는데  어느 날 “세례는 어디서 받는 것이 좋아요?”라고 물었다. 아내는 프린스턴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떠한지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세례를 받으려는 걸로 보아 아내가 이번엔 확실한 믿음을 가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이곳에서 받지”라고 말했다. 세례예식이 거행되었고 아내가 간증을 하였는데 끝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에게 그만 할 것을 말했는데 아내는 나를 밀치며 “여보 말리지 마세요. 난 3일 동안이나 잠을 못 잤어요.”라고 말했다. 아내는 흥분하고 있었다. 아! 하나님은 진실로 하나님이셨다. 아내가 하나님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영원히 믿지 않을 거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이미 아내를 위한 일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아내는 정말 순식간에 불같이 변했다. 친정식구, 아내의 오빠와 올케, 나의 어머니에게 권하여 결단하도록 권하였다. 그래서 모두 주를 영접하는 놀라운 결과가 있었다.

  신앙이란 이렇게 달콤한 것이다. 맛본 적이 없다면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이 달콤함을 한번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를 만나든지 그가 한번 맛보도록 그의 입안에 약간 발라 주고 싶어 할 것이다. 마오(毛)주석도 “당신이 만약 배의 참 맛을 알려면 입으로 직접 맛보아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맛보지도 않고 쓰다고들 하는데, 이것은 도대체 무슨 이치란 말인가?


얼굴색을 바꾸다

  신앙의 길을 걷노라면 늘 오해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신학교 안에서나, 아내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러나 예수님만 의지한다면 이 어려움을 하나하나 극복할 수 있고, 축복의 근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당신에게 내려 주신 은혜이다. 질투, 증오, 오해가 있을 때, 예수님을 의지하면 화가 그칠 뿐 아니라  평안함과 기쁨이 넘치고 마음이 넓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증오하고 침을 뱉는다면 기분 나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화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의지하여 그를 사항하고 용납하고 기도한다면 그는 감동할 것이다. 그러면 영원히 떠나지 않는 친구를 얻게 된다. 이것은 사랑을 통하여 얻었기 때문이다.  

  웨이징성이 미국에 도착하자 「타임즈」의 기자가 그를 인터뷰하려고 했다. 그 기자는 기독교인이었다. 중국어를 모르는 기자는 나한테 웨이징성에게 전달하려고 한다면서 기독교에 대한 중국어 자료를 요청했다. 나는 그에게 자료를 보내주었다. 나를 만나본 후 웨이징성은 쑤샤오캉한테 가서 물었다. “도대체 위옌즈밍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교회에 나가게 된 거지?” 쑤샤오캉은 “다른 건 나도 몰라, 단지 그가 큰 복을 받았다는 사실만 알아.”라고 말했다. 민주화 운동을 한 친구들은 우리 가족 모두가 주를 영접한 후  몰라보게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록 큰 돈을 벌지 못하지만 우리들에게서 다툼이 사라졌다. 우리들의 얼굴엔 빛이 났고 아이들은 말을 잘 들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사랑했고, 온 가족이 화목했다. 프린스턴에 있을 때는 열 몇 살이 젊었는데 안색이 좋지 않은 모습이 TV드라마에 방영됐다. 마치 빚쟁이에게 독촉이라도 당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그런 모습은 사라졌다.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간암이 지나간 흔적

  몇 년 전 아내는 피검사를 하다 간암이 발견되었다. 그 때, 아내는 아직 남가좌주의 LA에 있었고, 나는 이미 북가주로 이사하여《神州》란 TV연속극을 준비 중이었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나는 갑자기 온몸이 굳어지며 땅에 펄썩 주저앉았다.

  그 날 오후 나는 그곳에서 무릎 꿇고 통곡하며 나와 아내의 죄를 회개하였다. 사방이 온통 막혀 더 이상 길이 없을 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으므로, 나는 내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아내가 암에 걸렸다면 누구에게 기도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8시간 동안 계속해서 기도했다.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되, 네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그녀를 사랑한다.” 이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녀가 아직 잠을 청하지 않고 기도하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나는 아내에게 기도한 결과를 물었다. “오! 정말 오묘했어요. 오늘 내가 기도할 때, 성경 말씀 한 구절이 내 뇌리를 스치는 것이 아니겠어요.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딸아!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돌아가라는 말씀이었어요” 나는 너무 기뻤다. “됐어! 우리가 양쪽에서 기도한 것이 모두 상달된 거야.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을 치료하셨으니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

  이틀 후 집사람은 X레이, 초음파 검사,CT촬영을 했으나 간에 암 증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시 피검사를 했을 때 피 속에는 여전히 간암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 기간 동안 우리 부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기도했다. 세 번째 피검사를 할 때 수치가 조금 내려갔고, 네 번째가 되어서야 완전하게 정상이 되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정상이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기적이다.

  이 일을 통하여 우리들은 이 세상 모든 것은 과거로 지나갈 뿐, 의지할 수 없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결   론

  ‘마음속에 하나님이 임재하고 있는 사람은 흑암이 임할 때면 마음속의 등불이 더욱 빛을 발하고, 마음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은 사람은 흑암이 임할 때면, 그의 등불은 곧 꺼져버린다’는 구절이 있다. 너무나 좋은 말씀이다. 사람들은 평상시엔 기독교인에게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흑암이 임할 때 기독교인의 마음속에 있는 등불은 더욱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에겐 등불을 필요로 할 때 등불이 없다. 인생에 흑암의 때가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생로병사, 근심걱정, 불의의 재난은 대부분 당신이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인데, 당신은 이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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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P KOREA ♡ 차이나미션파트너(http://cafe.daum.net/china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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